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사랑하신다_ 행9:32-43

작성자
장동민
작성일
2018-10-02 00:15
조회
177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사랑하신다

9:32-43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일곱 차례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의문이 든다. 왜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은 살리고 어떤 사람은 살리지 않았을까? 모든 죽은 사람을 다 살릴 수도 있지 않았는가? 죽은 사람을 살려주는 기준이 애도하는 이들의 믿음인가 아니면 간절함인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찾을 수 없다. 단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무언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듯싶다. 그 뜻을 발견하라고 성경이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을 테니까.

성경에 기록된 소생(蘇生)의 기적들을 전수조사 해보자. (‘부활’이라는 단어보다 ‘소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겠다. ‘부활’이나 ‘소생’이나 원 뜻은 별 차이가 없지만, ‘부활’이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가리킬 때 사용되어 왔으므로 이와 구별하기 위함이다.) 소생의 자세한 과정은 생략하고 살린 사람과 살아난 사람들의 신분만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1. 예언자 엘리야가 사르밧 홀어머니의 아들을 살림 (왕상17장)

  2. 예언자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림 (왕하4장)

  3. 예수님이 가버나움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림 (막5장)

  4. 예수님이 나인 성(城) 홀어머니의 외아들을 살림 (눅7장)

  5. 예수님이 베다니의 마르다, 마리아의 형제 나사로를 살림 (요11장)

  6. 베드로가 욥바의 여제자 다비다를 살림 (행9장)

  7. 바울이 드로아에서 졸다 떨어져 죽은 청년 유두고를 살림 (행20장)


패턴을 찾을 수 있는가? 연령대로 보면 어린아이가 3명, 청년이 3명, 중년 부인이 1명이다. 성별로 보면 남자가 5명, 여자가 2명이다. 외아들 혹은 외딸인 경우가 5명이나 된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이 6명인데 사르밧의 과부는 이방인이었다. 특이한 점은 홀로 된 여인(과부)과 관계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엘리야가 살린 사르밧 여인과 예수님이 살린 나인성 홀어머니가 그러하였고, 베드로가 살린 욥바의 다비다는 홀로 된 여인이라는 말은 없으나 홀로 된 여인들을 위한 선행을 많이 베풀었다. 또 예수님이 살리신 나사로는 부모가 언급되지 않고 여자 형제들만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부모가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소생한 이들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 정도는 대체로 높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르밧 여인은 가난하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가난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좋아하신다

위에서 말한 사람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이들 가운데 아무도 특별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 중 누구도 왕이나 장군이나 위대한 지도자들이 아니다. 사도나 예언자와 같은 영적 지도자도 없다. 참 이상하다.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릴 때 쓸 데 없는 사람, 살아서는 안 될 사람을 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꼭 필요한 사람들, 좀 더 살았으면 좋겠는 사람들을 살렸을 텐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더 살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었나?

소생한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은 어디였나? 시대 순으로 나열하자면, 사르밧, 수넴, 가버나움, 나인, 베다니, 욥바, 드로아 등이다. 일곱 개의 지명 가운데 혹시 아는 이름이 있는가?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가버나움, 베다니 정도 귀에 익숙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지명들은 처음 들어보았을 것이다. 로마,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이라든지 뉴욕이나 서울 같은 도시가 아니다. 역사상 중요한 일이 일어났던 곳도 없고 앞으로도 별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곳들이다.

왜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좋아하시는 것일까? 글쎄... 성경에서 뚜렷하게 밝히지는 않는다. 그저 추측할 뿐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열심히 산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여 가족을 부양하는 일은 신성한 일이다. 성경이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시128:1-2상)

‘손이 수고한 것을 먹는 것이 뭐가 그렇게 복 받은 것인가, 수고하지 않은 것을 더 많이 얻어야 그게 복이지...’ 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수고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버는 것은 다른 사람이 수고한 것을 거저 받는 불노소득이 되는 셈이다.

평범한 사람은 자기의 손으로 수고하여 일하여 얻은 것이 얼마이든 그것을 먹고 살 뿐,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속이지 않는다. 아니 그런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또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번 사람은 그 돈을 죄악의 낙을 누리는 데 사용하지 못한다. 자신의 땀과 눈물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소중히 생각하고, 아껴 쓰고, 저축하고,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한다.

나는 SBS 방송의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벌써 13년 째 매주 방송하고 있는데 볼 때마다 은혜(?)를 받는다. 수십 년 동안 한 직업에 있으면서 열정과 노력을 다하여 달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찾아내어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쫄깃하면서도 바삭한 탕수육을 만들기 위하여, 또 진하면서도 담백한 설렁탕 국물을 내기 위하여, 상상하기도 어려운 방법을 사용한다. 수백, 수천 번의 실험을 거듭하여 자신만의 비법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사람들 중 큰 사업을 하여 유명했던 사람은 하나도 없고, 그들의 직업은 모두 손으로 하는 일이다.

버스 차장의 영어 단어장

우리 어렸을 적의 버스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좌석버스와 입석버스가 있었는데 좌석버스는 가운데 문이 하나 있었고, 입석은 앞과 뒤에 있었다. 각 문에는 여자 차장(나중에 순화되어 ‘안내양’ 혹은 ‘안내원’이라고 불렸다.)이 서서 돈이나 회수권을 받았고, 사람이 다 내리고 타면 ‘오라이’ 하면서 차 문을 두 번 두드린다. 회수권 안 내고 타는 개구쟁이 중고생들을 색출하는 것도 그녀들의 일이다. 10장이 한 묶음인 회수권을 절단하여 탈 때마다 한 장씩 내는데, 어떤 녀석은 10장을 11장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차장들은 이 역시 귀신 같이 잡아낸다.

차장의 일 가운데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은 ‘푸시맨’ 역할이었다. 러시아워 때는 버스 한 대에 100명도 더 타야 하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생각하지만, 우리 버스의 3분의 1 크기 밖에 안 되는 필리핀 짚니에 수십 명이 매달려 가는 광경을 본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책가방을 손에 들지 않아도 둥둥 떠다녔다. 등교시간, 출근시간에 늦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발 한 짝이라도 버스에 걸쳤고, 차장이 이 사람들을 다 감싼 채 양손으로 버스 문 옆의 세로 봉을 잡으면, 버스는 출발한다. 소위 ‘개문발차’(開門發車)이다. 운전기사가 재치 있게 차를 왼쪽으로 휙 기울이면 문에 매달려 있던 손님과 차장이 모두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때를 놓칠세라 차장은 버스 문을 잽싸게 닫는다. 거의 신기에 가깝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버스 차장들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 정도의 여성 근로자였다. 무작정 상경하여 더러는 공장에 취직하고 몇몇은 이리로 흘러들어온 시골처녀들일게다. 휴일도 없이 하루 12시간, 14시간 이상 온 종일 서서 이 일을 하니 얼마나 피곤하고 힘이 들었을까? 밤이 되면 문에 기대서서 꾸벅꾸벅 조는 차장들이 많이 있었다. 그렇게 피곤한데도 한결같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다. 영어 단어장이다. 같은 나이 여학생들이 하얀 교복을 입고, 재잘거리며 학교 이야기, 공부 이야기, 남학생 이야기할 때, 얼마나 학교에 가고 싶었을까? 차장으로 일해서 돈 벌어, 시골에도 부쳐주고, 조금씩 저축하였다가, 기회가 되면 자기도 중고등학교 공부하기 위하여 꾸벅꾸벅 졸면서도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40년이 지난 오늘, 가난하지만 열심히 사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아니 가난한 사람이 열심히 일해도 지위가 상승되기 어려워졌다고 해야 더 맞겠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하여 열심히 사는 사람을 게으르다고 무시하기까지 한다. 화이트칼라는 다른 사람을 부리고 돈을 굴리고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피하여 큰 이익을 얻는다. 대기업은 신규 사업에 투자하는 것보다 경제위기에 경매 물건을 사서 자산을 늘이고, 돈 좀 있는 투자자들은 자기 아파트가 한 해에 몇 억 오른 것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랑한다. 공직자들이 지위를 이용하여 돈을 벌고, 가난한 사람들은 로또에 희망을 걸고, 젊은이들은 게임과 영화에 몰두한다.

노동자가 땀 흘려 일하고, 회사원은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며 성실하게 출근하고, 기업가는 새로운 상품과 유통을 창조하기 위하여 밤을 새우고, 주부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하여 절약하고, 학생들은 진리를 알기 위하여 밤을 새워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삶이다. 자녀들에게 노동의 신성함을 가르치고, 땀 흘리는 것이 아름다운 것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기독교계도 마찬가지이다.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은 평범한 성도, 평범한 목사들이다. 전도와 설교에 최선을 다하고, 성도들 한 영혼을 위하여 가슴 아파하며,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매일 새벽 기도하는 목사들이다. 그 목사의 인도를 믿고 노방에서 전도지를 나누어주고, 교회 바닥을 걸레질하고, 꼬박꼬박 십일조를 바치는 성도들이다. 그 기반 위에 노회와 총회가 있고, 신학교가 있고, 대형교회가 있고, 기독교신문과 방송이 있고, 선교단체가 있고, 기독교 연합단체가 있고, 글을 써서 이름을 날리는 기독교 저술가가 있고, 가짜 뉴스 생산자가 있다. 이 기관들에 종사하는 이들의 봉급과 사례비와 강연료와 홍보비와 해외여행비와 자녀유학비가 평범한 성도들의 주머니에 의존하고 있다.

자산의 기본 가치는 늘어나지 않는데 그 자산에 기초한 금융상품과 그 금융상품의 파생상품, 또 파생상품을 만들다가, 어느 순간 버블이 꺼져 버린 2008년 금융위기가 생각난다. 투자은행 애널리스트들과 정부 관료와 관변 학자들의 범죄에 가까운 도덕적 해이가 밉고, 그들의 말에 속아 집을 잃고 텐트를 치고 사는 몰락한 중산층의 불운이 안타깝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하는 것은 땀 흘려 일하고 아끼고 저축하는, 작은 희망을 품은 노동자들로부터 일할 의욕을 앗아간 것이다. 혹시 한국 교회의 목사들이 한 영혼을 돌보는 평범한, 그러나 가장 어려운 목회 사역에 대한 의욕을 잃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평범한 사람들의 봉사를 통하여 복음이 전파된다

성경은 위대한 영웅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위대한 예언자와 사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펼치고 교회의 초석을 놓았다. 하늘에서 떡이 내리게도 하고 불이 내리게도 하고 비가 오게도 하였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위대한 가르침을 전파하였고, 역사의 향방을 결정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으며, 천대까지 남을 만한 위대한 편지를 썼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돌에 맞기도 하고 끝내 목숨을 내어 놓는 순교의 영예를 안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경을 영웅들의 이야기로 읽는 것은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는 것이다. 첫째, 성경의 ‘영웅’들은 전혀 영웅답지 못하다. 그들의 출신은 비천하였고, 그 인격과 경건은 보통 사람의 그것에도 미치지 못하였으며, 그가 남긴 유산은 쉽게 무너졌다. 성경은 그들의 실수와 비리와 탐욕과 인간적인 연약함을 기록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요컨대 그들은 우리와 성정(性情)이 같은 사람들이다.

둘째, 성경은 영웅들 외에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들의 수고를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신다. 성경에 소생(蘇生)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의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섬김의 사람들이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살린 아이들은 자신들을 극진하게 대접하던 사람들의 아들이었고, 예수님이 살리신 나사로의 가정은 집을 오픈하여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겼다. 베드로가 살린 다비다(다비다는 아람어이고, 헬라식 이름은 도르가이다.)가 그랬다.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행9:39하)

다비다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주부로 살던, ‘암사슴’이라는 뜻의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여인이었다. 예수를 영접한 이후 그의 영혼에는 큰 변화가 있었지만 그의 삶의 환경이 획기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예수를 믿은 이후에도 그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평생 손에 익은 바느질밖에 없었다. 그는 바느질로 다른 사람을 섬기고자 하였다. 너무 가난하여 옷을 입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옷을 지어서 입혔다. 남편을 잃고 힘든 삶을 살아야 하였던 항구도시 욥바의 홀로 된 여인들의 말동무가 되어 주고, 음식을 해 먹이고, 옷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의 봉사를 통하여 그 지역의 많은 여인들이 주님께 돌아왔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여전도회의 시작

한국 교회 여전도회는 1898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63명의 여성도로 시작하였다. 이들은 매 주일 엽전 한 푼씩 모아 여자 한 사람을 다른 지역을 보내 전도하게 하였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1900년 정동교회에서 황씨 부인 여메례라는 여성으로부터 여전도회가 시작되었다. 아펜셀러선교사가 1900년 가을 안식년을 맞아 본국에 들어가는 것을 못내 섭섭해 한 여성도 여메례는 모금을 계획하였다. 1인당 20전씩 추렴하여 놋그릇 한 벌을 사서 선물하였고, 함께 사진도 찍어 현상해 드렸다. 다 쓰고 남은 돈이 1원 10전이었다. 이 돈을 어떻게 쓸까 의견이 분분하였다. 성탄절이 가까워 오니까 크리스마스 선물로 다른 선교사에게 선물로 주자는 의견이 나왔다. 황씨 부인이 다른 의견을 냈다. “우리가 선물하려고 거둔 돈으로 재정을 삼고 한 회(會)를 모읍시다. 이 회는 우리 교우 중 빈한한 자를 돕도록 합시다.” 이것이 서울에서의 여전도회의 시작이다.

한국교회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 여전도회의 역할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난한 교역자를 섬기고, 교회의 교제와 상례를 도맡아 감당하고, 어려운 성도를 돕고, 이웃에게 봉사하고, 선교 기금을 모아 해외에 교회를 지었다. 찬양대회, 성경퀴즈대회, 암송대회 등을 진행하여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내가 목회하던 교회들에서는 여전도회가 남전도회보다 약 10배 정도의 재정을 운용하였다. 이들의 업적에 대하여 기록한 연구도 별로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여전도회에서 궂은 일하면 담임목사의 얼굴이 빛날 뿐이다. 만일 이들의 업적을 조사하고 연구하려 하면, 이들은 “글쎄요? 우리가 한 일이 무슨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머리를 긁적일 것이다.

이들을 위해 주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마10:41-42)

내가 과연 이 예수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믿고 있는가? 나는 ‘선지자’나 ‘의인’이나 ‘제자’의 이름을 얻기 위하여 가르치고 설교하고 글을 쓰며, 그렇게 인정받지 못할 때 조바심이 난다. 평범한 사람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해야 할 때 다소 짜증이 나고 시간이 아깝다. 평소에 비범하다고 생각하지 않다가도, 별것 아닌 사람이 셀럽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약간, 아주 약간, 샘도 나고 부아도 인다. 그렇게 느끼는 걸 보니 평범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시몬이라는 무두장이

다시 베드로에게로 돌아가자. 하나님이 일하실 때는 위대한 사람들 뿐 아니라 더 많은 평범한 사람을 통하여 일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겸비할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성경의 모든 지도자들은 모두 알고 있었고 다비다를 살린 베드로도 잘 알고 있었다.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행9:43)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리는 기적을 행한 후 시몬이라는 무두장이의 집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였다는 기록이다. 별 뜻 없는 말씀 같은데 성경에는 뜻 없는 말씀이 없다. 욥바는 지금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의 북쪽에 자리 잡은 오래 된 항구도시이다. 무두장이 시몬의 집은 지금도 해변에 남아 있어 성지순례객이 꼭 들르는 곳이 되었다.

무두장이는 소나 양의 가죽을 만지는 사람이다. 짐승의 고기와 뼈를 발라내고 남은, 털이 붙은 가죽이 원재료이다. 피떡이 눌어붙은 털을 뽑고, 기름덩이를 떼어내고, 말리고 손질하고 약품을 사용하여 부드럽게 만든다. 이 가죽은 옷과 신발을 만들고, 텐트를 제작할 원재료가 된다. 무두장이의 집이 바닷가에 있었던 것은 무두질을 하는데 바닷물이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몬의 집안에는 양털과 가죽이 쌓여 있고, 비릿한 냄새와 고기 썩는 고린내가 진동하였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죽은 짐승의 시체를 접촉하는 것을 부정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무두장이와 가까이하지 않으려 하였다. 과거 우리나라를 비롯한 거의 모든 문화에서 무두장이는 천민이었다.

베드로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고 있다. 당시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수장이다. 그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고, 그가 기도하면 중풍병자가 낫는다. 금방도 죽은 사람 하나를 살렸다. 비행기 비즈니스 석으로 여행하고, 5성급 호텔에서 묵고,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밥 먹고, 태권도·유도·합기도 유단자 경호원의 호위를 받고, 그 지역의 유지들과 만나서 골프도 치고, 고상한 신학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생각해야 하는 VIP 중의 VIP였다. 아이고, 귀한 몸을 함부로 쓰다가 유대인 극렬분자에게 암살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베드로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이 평범한 사람인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암살당하면 하나님은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을 세워서 그가 하던 일을 대신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 앞에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단지 자기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과, 자기를 비범하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