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기념박물관의 기억법

작성자
장동민
작성일
2018-12-08 18:39
조회
146
9·11 기념박물관의 기억법

벼르던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제로에 건설된 9·11 기념박물관(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 & Museum)을 방문하였다. 9·11테러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건설된 뉴욕의 기념 조형물과 박물관이다. 무너진 두 건물 바로 그 자리에 두 개의 네모반듯한 거대한 검은 대리석 동공(洞空)을 만들고 물이 조용히 흘러들어가게 하였다. 워싱턴 D.C.의 홀로코스트 뮤지엄에도 검은 돌과 물로 장식된 침묵의 방이 있는데, 혹시 홀로코스트와 9·11을 오버랩시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희생당한 3천 명의 이름이 가지런히 쓰여 있다.

박물관 내부의 전시물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테러 당시의 참혹상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 놀란 시민들의 모습이 시간대별로 계속 방영되었고, 둘째, 소방관, 경찰관, 시민 등의 헌신적 노력으로 인명을 구출하는 감동적인 모습, 셋째, 테러리스트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사전 준비를 하였는지 등이었다. 관람을 마친 이들이 숙연한 마음으로 출구로 난 계단을 올라갈 때 ‘Amazing Grace’ 찬송이 은은하게 울렸다.

이 기념관은 관람객에게 무엇을 기억하게 하고 싶은 것인가? 관람을 마친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될까? 위대한 영웅들이 사는 아메리카, 하나님이 택하신 신성한 나라를 저 추악한 이교도들이 유린하였음을 알리고 싶었다. 절대 악(惡)인 이들은 언제든지 우리 문명과 신앙을 다시 짓밟을 수 있으니 이들의 공격으로부터 사랑하는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 보복과 응징이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기념관에 와서 저들이 어떤 참혹한 일을 저질렀는지 보라. 여기에 테러리즘의 더 깊은 원인 분석은 없다. 양 문명 간의 침략과 살육의 역사에 대한 이해도, 타 문명과의 공존을 위한 대화와 화해의 노력도 없다. 여기서 기독교는 용서와 원수 사랑의 십자가가 아니라 위대한 미국 문명 위에 씌워진 왕관이다.

참으로 우연히도 나는 바로 전날 미로슬라브 볼프의 『기억의 종말』의 다음 부분을 읽었다.
...피해자들이 자신을 보호하려 하다가 가해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독한 박해자들은 흔히 “목이 완전히 잘려 나가지 않은 순교자들 중에서 모집된다.” 그들은 박해받은 기억 때문에 아무 위험이 없는 곳에서도 위험을 본다. 그렇게 해서 존재하지도 않는 위험을 과장하고 안전보장을 위해 과도한 폭력과 부적절한 예방조치를 일삼는 등 과잉반응을 보인다. 종종 피해자들은 바로 그들의 기억 때문에 가해자가 된다. 그들은 과거에 피해자로 겪었던 일을 기억하기 때문에 현재 자신이 휘두르는 폭력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관찰자들이 보기에는 분명 편협함이나 증오에서 생겨난 폭력행사인데도, 그들은 그것이 합법적인 자기방어라고 정당화한다. 이처럼 기억이라는 보호의 방패는 폭력의 칼로 쉽사리 탈바꿈한다. (미로슬라브 볼프, 홍종락 역, 『기억의 종말』 (서울: IVP, 2016), p. 55)
전체 19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9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의 한국 기독교" 소개
장동민 | 2019.07.05 | 추천 0 | 조회 22
장동민 2019.07.05 0 22
18
9.11 기념박물관의 기억법
장동민 | 2018.12.08 | 추천 1 | 조회 146
장동민 2018.12.08 1 146
17
크리스마스의 기적
장동민 | 2018.10.25 | 추천 4 | 조회 181
장동민 2018.10.25 4 181
16
버스 차장의 영어 단어장
장동민 | 2018.10.06 | 추천 5 | 조회 159
장동민 2018.10.06 5 159
15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장동민 | 2018.08.16 | 추천 3 | 조회 180
장동민 2018.08.16 3 180
14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
장동민 | 2018.08.11 | 추천 3 | 조회 165
장동민 2018.08.11 3 165
13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와 문화의 타락
장동민 | 2018.08.11 | 추천 3 | 조회 110
장동민 2018.08.11 3 110
12
영원한 오늘을 사는 삶: 히브리서에 나타난 과거와 현재의 긴장
장동민 | 2018.08.11 | 추천 1 | 조회 94
장동민 2018.08.11 1 94
11
한국사회의 발전과 여성크리스천의 역할
장동민 | 2018.08.11 | 추천 2 | 조회 95
장동민 2018.08.11 2 95
10
신명기 영성의 특징
장동민 | 2018.08.11 | 추천 2 | 조회 117
장동민 2018.08.11 2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