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작성자
장동민
작성일
2018-08-16 18:00
조회
197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인 ‘주기도문’의 두 번째 간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이다. 이 두 번째의 간구 즉 “하나님의 나라여 오시옵소서!” (Your Kingdom come!)는 주기도문의 일곱 간구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나라’ 혹은 ‘천국’(天國)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모든 사건과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면 나의 마음이 천국이고, 하나님이 주인이신 가정도 천국이며,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온전히 다스리시면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믿는 사람이 죽어서 들어간다고 하는 ‘천당’(天堂)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땅속에 묻히거나 불에 타서 한 줌의 재가 되지만, 영혼이 죽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있을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다스릴 테니까 그곳도 ‘하나님의 나라’라고 불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천당이 전부는 아니다. 만일 하나님의 나라가 ‘천당’을 의미한다면, 주기도문은 우리가 빨리 죽게 해 달라는 기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교회 건물 안에 있어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나라 vs. 마귀의 나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고 하니,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라며, 하나님께서 다스리지 않는 곳도 있나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아닌가요?’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질문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신다. 당신의 뜻에 따라 세상의 통치자를 세우고 폐하시며, 제국을 일으키기도 하고 망하게도 하신다. 궁극적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동시에 마귀가 세상의 왕이기도 하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은 내게 넘겨 준 것”(눅4:6)이라고 말하기도 하였고, 예수님도 마귀를 가리켜 “이 세상의 임금”(요12:31)이라고 부르셨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이면서 동시에 마귀가 임금 노릇을 하는 마귀의 나라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원래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주권국가였다. 1910년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자, 이에 맞서 3.1운동이 있던 1919년 4월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웠다. 자 그러면 1910년부터 해방 때까지 36년 동안의 한반도는 일본의 주권 하에 있는 일본의 일부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영토인가? 본래적인 의미에서는 대한민국의 영토이고, 당시 한반도에 살던 백성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의사와 열사들이 거사를 일으키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이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죽었다.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각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실효적으로 한반도는 조선총독부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일본 정부의 국법에 따라 살고, 일본 정부에 세금을 내고, 일본식 교육을 받았다.
하나님의 나라와 마귀의 나라의 관계도 이와 유사하다. 궁극적으로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이다. 그러나 마귀[Satan]가 그 나라에 침범하여 왕위를 찬탈하였다. 마귀와 그의 지배를 자청한 인간 때문에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여지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이 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의 각 분야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거부하는 마귀의 세력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결과 정치계는 권력 투쟁의 장이 되었고, 경제계는 부와 이익만을 좇고, 사회적으로는 편견과 차별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폭력적이며 선정적인 문화가 우리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교육을 통하여 양육강식, 승자독식의 논리가 내면화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소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단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마귀의 지배 하에서 신음하는 이 세상을 다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 오셨다. 다음 성경구절의 의미를 새겨보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5)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12:28)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다스림을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제 그 다스림이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기를 위하여 기도하며 또한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예수님의 대리인(agent)으로 부름을 받았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단어가 있다. 바로 ‘임하다’(come)라는 동사이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라고도 말하고,(예. 요3:5)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표현도 사용한다. 어떤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예컨대 한국사람이 미국으로 이민 가는 것과 같다.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에 속해 있기 싫어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싶다는 고백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은 훨씬 더 과격하고 혁명적인 것이다. 다시 일제강점기로 돌아가 보자. 한반도에 대한민국이 임하기 위하여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야 하는가? 임시정부가 일본과 전쟁을 해야 한다. 그 전쟁에서 승리하여, 일본을 몰아내고, 국민을 해방시키고,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고, 진정한 주권국가임을 세계만방에 알려야 한다. 일제의 잔재를 몰아내고, 일제에 부역하였던 사람을 처형하고, 일본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일본식 법률체제와, 천황제에 기초한 일본의 통치 구조를 다 바꾸어야 한다. 니뽄도를 차고 학생들을 군인 다루듯 하는 일본식 교육제도를 없애야 하고,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하는 일본식 역사교육을 폐지해야 하고, 식민지 통치가 우리나라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 식민사관을 뿌리 뽑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가 임하옵소서.”라고 기도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나 혼자 예수 믿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지배하던 모든 제도와 뒤집고, 가치를 전복시키고, 사람을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이란 바로 이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선언이고 결심이고 평생의 기도이다.

성도: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지는 최소 단위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곳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다. 좀 더 자세히 셋으로 나누어 생각해 본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들에게 임해야 한다. 성도의 마음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지는 최소의 단위이자 기본이다. 내 안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는데 국가나 사회와 같은 제도가 변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다음의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요약인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의 맨 첫 구절로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마음을 요약하고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5:3)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살면서, 자신도 의롭게 살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고 애통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하기를 사모하는 마음이다. 그는 그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며, 다른 사람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의’(義)를 고대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맛본 사람은 이 때문에 박해를 받아도 이를 감사하며 견딘다.
또 한 구절을 보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14:17)

죄악과 두려움으로 망가진 삶이 회복되어, 안으로는 평화가 깃들고 밖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교회: 하나님의 다스림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성도의 공동체

교회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가장 잘 나타난 거룩하고 영광스런 기관이다. 다음은 교회의 특징을 묘사하는 성경의 표현이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5:17)

‘티’는 도덕적으로 흠 잡힐 만한 것 결점을 의미하고, ‘주름’은 왜곡되어 일그러진 흉터이다. 교회의 특징 첫째는 거룩함이다. 또한 두 번째 특징은 교회는 민족과 성별과 사회적 지위를 초월하여 만민이 평등한 공동체이며, 가장 연약한 사람도 용납하고 받아준다.

거기에는[하나님의 나라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골3:11)

필자가 어렸을 적 다니던 교회는 문화촌이라는 곳에 있었다. 교회 앞 도로는 폭이 약 2m 되는 좁은 길이었고, 얕은 실개천이 있고, 포방터 시장통을 지나면, 산동네에 무허가 판자촌이 수천 채가 있었다. 지금은 다 재개발이 되었지만 당시에 수만 명 되는 도시빈민들이 그 무허가 판자촌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컴컴한 밤이 되면막노동 하여 하루 벌어 사는 사람들이 연탄 한 장 새끼줄에 끼우고, 봉지쌀 사서, 가로등도 없는 좁은 길을 줄줄이 올라갔다. 등록금이 없어 자녀들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공장에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자신의 생애를 다 바친 귀한 분이었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이었지만 좁은 집에 사셨고, 겨울이면 빵모자 쓰고 추운 강단에서 늦게까지 ‘주여, 주여’ 부르면서 기도하였고, 마침내 설교하다가 강대상에서 쓰러져 돌아가셨다. 교역자들은 모두 기도의 사람, 말씀의 사람이었고, 장로님들은 교회 짓기 위하여 집을 팔았다.
그 교회 지하실이 있었다. 한 5,6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곳. 냄새 나고 습기가 항상 차 있는 축축한 곳이었다. 밤 9시에서 10시가 되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젊은이들이 퇴근하면서 교회에 들르는 것이다. 하루 종일 일하고 밥도 못 먹었는데 그 음습한 지하 기도실에 모여드는 것이다. 의자가 있었지만 아무도 의자에 앉지 않았다. 저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벽을 마주 보고 앉았다. 손을 들고 한 시간씩 기도하고서야 기도실을 떠났다. 눈물을 흘리면서 부르짖어 간구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었다.
나의 마음 한구석에 간직한 교회의 모습이다. 나는 늘 마음에 소원을 품고 있다. 과거 내가 경험하였던 교회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하여 나의 작은 희생을 보태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영광스런 교회를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깝다.

세상: 하나님의 나라가 펼쳐져야 할 궁극적 목적지

교회는 자신의 보존과 성장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 위하여 세상을 섬겨야 한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1:23)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가득 채워주신 모든 좋은 것들을 세상으로 흘려보내어야 한다. 성도들은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대사(大使)들이다. 가정, 직장, 기업, 문화, 예술, 교육, 학문, 정치, 남북관계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위하여 삶을 바쳐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의 일을 ‘교회’에게 맡기셨다. 교회의 우두머리는 예수님이시고, 교회는 예수님의 일을 대신하는 그의 몸이다. 교회는 세상의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구조선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칠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훈련소이다. 교회의 구성원인 기독교 신자들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과 능력을 받으며, 이후에는 세상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나타나기를 위하여 힘써야 한다.

하나님 나라 운동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지는 것은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다.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는 것은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 마음이 변하는 것은 성령의 하시는 일이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리의 마음이 깨끗하게 하신다. 인간의 학문적 노력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의 본질을 꿰뚫을 수 없다. 세상을 변혁시키려 할 때 다가오는 사탄의 교묘한 저항과 박해에도 살아남기 위하여 성령의 능력을 구하여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에서 봉사하기 위하여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기 위하여 더욱 필요하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아랍의 독립전쟁에서 공을 세운 영국인으로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는 몇 사람의 아랍 지도자들을 파리로 데리고 갔다. 베르사이유 평화조약을 설명하고 여기에 가입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막에서만 살던 아랍 지도자들은 파리의 발달된 문명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중에서도 그들의 호기심을 가장 많이 불러 일으켰던 것은 호텔 방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물이었다. 아랍 지역에서는 족장의 허락 없이 우물물을 마시면 죽음을 당할 정도로 물이 귀하다. 이곳 호텔 방에서는 꼭지를 돌리기만 하면 끝없이 콸콸 흘러나오는 것이 너무 신기하였다. 회담을 마치고 파리를 떠날 때가 되었다. 짐을 꾸려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 지도자들은 모두 호텔 방에서 나오면서 손마다 무엇인가를 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수도꼭지였다. 꼭지만 가지면 마음대로 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의 물줄기가 우리를 통하여, 우리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흘러들어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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