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영성의 특징

작성자
장동민
작성일
2018-08-11 12:00
조회
138
신명기 영성의 특징

 

신명기(申命記)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의 여정을 끝내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 여호수아에게 리더십을 이양하면서 모세가 행한 마지막 설교를 기록한 책이다. 하나님께서 지난 40년 동안 행하신 위대한 일을 회고하면서,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 지켜야 할 의무를 재점검한다. 모세는 언약의 율법을 지킬 때 받을 복과 지키지 않을 때 받을 화(禍)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유언을 노래로 남겼다. 모세의 120세 인생을 마치는 것으로 모세오경의 마지막 책은 막을 내린다.
신명기는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하나님의 진노로 다윗 왕조가 몰락하던 시기 요시야 왕이 성전에서 신명기를 발견함으로 새로운 개혁이 일어났던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왕하 22장) 신명기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과의 언약의 내용과 율법준행에 대한 상벌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신명기의 관점을 가지고 이스라엘 흥망의 역사(여호수아부터 열왕기하까지)가 기록되었다고 하여, 학자들은 이 역사서들을 ‘신명기역사’(Deuteronomic History)라고 부른다. 예수님께서도 마귀에게 시험 당하실 때 신명기에 있는 세 구절을 인용하시며 이를 물리치셨다.
성경이 유기체와 같기 때문에 신명기의 영성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명기에는 오늘날 영성운동 혹은 영성신학에 대한 중요한 문제의식과 대답이 있기 때문에 한번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다. 신명기에 나타난 영성의 특징을 다음 몇 가지로 살펴보자.

첫째, 신명기는 과거를 회고함으로 현재를 조망한다. 신명기는 글자 그대로 두 번째 받은 명령이다. (申=되풀이할 신, 命=명할 명) 출애굽한 직후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맺고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일이 있다. (출19-24장) 40년이 지난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압 광야에서 지난날을 회고하며 새롭게 언약을 갱신하고 율법을 받는 것이 신명기이다. 그런데 과거 40년 전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5:3)고 한다. 신명기에서는 시내산에서 세운 언약을 갱신(renew)하고 있는 것이다.
신명기에는 ‘오늘’이라는 단어가 무려 71회나 쓰였다! 과거 애굽에서 큰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불러내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역사하셔서 가나안 족속을 이길 수 있게 하신다. 애굽에서 종노릇할 때 고생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외국인과 나그네들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에 들어가서도 광야 길에서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조상들이 광야에서 거역했던 일,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샀던 일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과 하나님의 은혜는 과거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일, 그리고 미래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일이다.
우리의 영성도 과거를 회고함으로 현재를 조망하는 영성이어야 한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을 기억하는 것이 신앙의 기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사건을 전하는 것이고, 일 년에 수차례 시행하는 주의 만찬은 바로 그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루신 일의 기록인 성경에 깊이 뿌리박지 않은 신앙은 닻 없이 밀려다니는 떠돌이 배와 같다. 오늘날 많은 영성운동가들이 하나님이 이루신 과거의 사건을 무시한 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명상하는 것을 통하여 높은 경지에 도달할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이는 기독교적 영성이 아니다.
그러나 과거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는 아니다. 바로 그 구속의 사건이 오늘 우리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음을 또한 체험해야 한다. 우리 예수님은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이고, 우리가 읽는 성경은 죽은 글자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헤집는 날카로운 칼이다. 어렸을 적 부흥회에서 은혜 받고 헌신했던 것을 회고하고, 청년부 회장으로 봉사하던 때를 자랑하며, 과거 순수했던 때의 믿음을 그리워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한국교회 과거의 급성장을 동경하고, 수백만 명씩 모이는 대형집회의 시대로 회귀하려 하고, 조상의 순교에 프라이드를 갖는 것은 모두 쓸모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항상 살아서 과거에 경험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은혜를 주시는 분이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율법의 조문을 지킨다. 신명기를 대단히 지루하고 무의미한 책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계명들을 나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5장의 십계명을 필두로, 성일과 제사에 관한 법(12장), 거짓 선지자를 죽여야 하는 법(13장),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14장), 십일조(14장), 면제년과 종에 대한 법(15장), 3대 절기(16장), 재판장, 왕, 제사장, 선지자(17-18장), 도피성(19장), 전쟁에 관한 법(20장), 가족관계와 이혼 재혼법을 비롯한 사회적인 법(21-25장) 등등. 이 법들 가운데는 지금 우리가 이해하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못할 법들이 많이 있다. 노예제도, 계대결혼 등 오늘날의 현행법으로는 금지된 것들도 있다.

오늘날 우리는 ‘율법’을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바울서신에서 반복적으로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행동을 ‘율법적’이라고 부르거나 혹은 어떤 사람을 ‘율법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지독한 비난이다. 하지만 신명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부자유하게 하는 옭아매는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을 리가 없다.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이며, 그 계명은 꿀과 같이 달고 인생길에 빛을 던져준다. 이 법을 지키는 사회는 차별과 가난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 샬롬의 세상이 된다. 물론 오늘날 글자 그대로 율법을 적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 것이고(롬7:12),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일점일획도 없어질 수 없는 것이다.(마5:18)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는 선물이다. 율법을 지킬 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야 한다. 마음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사랑이 없는 행위는 자신의 의를 나타내고자 하는 위선일 뿐이다. 신명기에서 중요한 단어 하나를 더 고르라면 ‘마음’이다. 신명기에만 모두 49회 나온다. 계명 가운데 가장 큰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5)는 말씀이다. 율법이 복잡하고 난해하고 지킬 수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30:14)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계명을 지킬 것이고(요14:15), 계명을 지키는 자가 사랑하는 자이다.(요14:21)
재미있는 것은 “마음의 할례”라는 표현이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언약의 외적인 표시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몸 뿐 아니라 마음에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신명기에서 말씀하신다.(10:16, 30:6)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겸손할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신명기를 주의 깊게 읽은 후대의 선지자들, 특히 예레미야는 이 단어에 주목하였다.(렘4:4, 9:26) 외적으로 할례 받은 것을 자랑할 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한 것이다. 신약시대 스데반과 사도바울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위선적인 유대인들을 향하여 마음에 할례 받지 못한 자라고 하였다.(행7:51, 롬2:29) 신명기적 영성의 핵심을 파악한 것이다.

셋째, 개인의 영성과 공동체의 영성은 분리할 수 없다. 흔히 영성이라 할 때는 개인의 영성을 가리키는 일이 많다. 최근의 영성운동가들은 율법주의적인 교회 생활에 염증을 내고, 시끄러운 대중집회보다는 고독하게 하나님을 대면할 것을 강조한다. 마치 중세 사막의 교부들이나 수도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공동체로부터 떠나서 은둔생활을 하는 것이 영성을 고양시키는 길이라고 한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침묵 가운데 자신을 살피는 것이 영성을 회복하는 방법이라 한다.
‘마음’을 강조하는 신명기에서는 당연히 개인의 영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은 개인이 하는 일이다. ‘십계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열 가지 계명은 모두 2인칭 단수 ‘너’에게 명령한 것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잘 살게 될 때 교만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사람도, 애굽과 광야에서의 어려웠던 일을 기억하며 겸손해야 할 사람도,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저주를 받을 사람도 모두 개인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입’과 ‘마음’에 가까이 두어서 순종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개인이다.
그러나 동시에 신명기의 언약은 이스라엘 공동체와 세우신 것이고, 이 모든 계명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주어진 것이고, 또한 순종의 축복과 불순종의 저주가 모두 하나님의 백성 전체에 미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구원하고 언약을 맺으신 이유는 바로 이들이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복을 받는 모습을 둘러 있는 이방 나라들이 보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었다. (4:5-8) 이 사명을 간직하고 주의 뜻대로 산다면 온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들이 열국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우리가 즐겨 읽고 외우는 신명기 28장의 복은 모두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주신 복이다.
자 그렇다면 신명기의 명령과 복과 저주는 개인에게 준 것인가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준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다. 과연 개인과 공동체를 이렇게 구분할 수 있을까? 공동체가 다 죄를 짓는데 개인이 순전을 유지할 수 있는가? 개인이 죄를 짓는다면 이는 공동체 안에서 짓는 것이다. 한 개인이 성장한다는 것은 죄악으로 가득한 그 사회의 관습이 내면화 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회의 구조와 제도가 왜곡되어 있으면 개인이 반드시 영향을 받게 마련이고, 또한 반대로 개인의 결정에 따라 사회 구조와 제도가 왜곡되기도 한다. 물론 때로 악한 사회에서 특별히 의로운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다. 혹은 매우 정의로운 사회에서 특별한 악한이 태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특별히 의로운 사람은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려 할 것이요, 특별한 악한은 그 사회에서 제거되든지 아니면 필경은 그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기 마련이다.
우리 조국의 기독교는 전체적으로 말해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인 신앙과 순종과 복에 대하여 강조하지만 사회 전체가 샬롬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하여는 무관심하다. 성경에, 예컨대 신명기에, 나타나는 화와 복이 대부분 공동체에 맞추어져 있는데 이를 보지 못할 정도이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 전쟁이 그치고 평화의 소식이 오가는 나라, 생명을 살리는 정치와 문화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하여 강단은 침묵한다. 사회 구조가 악하게 돌아가는데 개인이 복을 받고 잘 산다는 것은, 그 악한 사회구조에 일조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위에서 신명기에 나타난 영성의 특징을 세 가지로 살펴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인 신명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영성이 균형 잡히고 깊어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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